베르메르의 모자
네덜란드 델프트(Delft) 여행 중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에 활약한 화가 요하네스 베스메르(Johannes Vermeer)의 묘비석 앞에서 감개무량했던 소회를 풀어 놓았던 지난 포스팅 후 오래 전에 사두었다가 읽지 않고 서가에 방치해 두었던 「베르메르의 모자」란 책을 읽었는데 내가 베르메르의 묘비석이라고 알고 있던 그 앞에 서 인증샷까지 찍어두었던 그 자리가 사실은 베르메르의 묫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황당했다.
책 해설에 의하면 오늘날 베르메르는 네델란드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가 위대한 화가라고 인정받은 것은 그의 사후 거의 200년이나 지난 19세기 무렵 2세기 동안 잊혀졌던 화가가 갑자기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베르메르는 당시 전통에 따라 사망 후에 가족이 마련해두었던 델프트 구교회(Oude Kerk) 안에 묻히게 되었는데 사망 당시 그는 괜찮은 화가로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교회 한 묘지에 따로 비문을 표시해 기념할 만큼 저명한 사람은 아니어서 그가 교회 안 묘지에 매장되었다는 것만 확실할 뿐 그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가 매장된 델프트의 구교회는 1921년에 큰 화재가 있었고 교회 내 묘지의 판석들이 화재로 검게 그을려지자 이 판석들을 모두 꺼꾸로 뒤집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베르메르의 묘지라고 표시된 그 판석은 그의 사후 2세기가 지나 베르메르가 위대한 화가로 재조명 받기 시작하고 그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델프트의 구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델프트 사람들이 20세기 들어 적당한 판석을 골라 그 위에 새긴 것이라 한다. 즉 그 판석은 이 자리에 베르메르가 묻혀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 안에 베르메르가 묻혀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일 뿐이었던 것이다. 참 지독한 네덜란드 사람들 더취(Dutch)들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책을 샀을 때는 내가 네덜란드를 델프트를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책을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감상했던 내 감동과 그가 묻혀있는 델프트의 구교회 안에 있었던 그날 오후 내 마음 속에 일었던 감동이 전혀 바래지는 않았다는 점을 따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다시 델프트 구교회에 갈 기회가 있다면 예배당의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교회 전체를 차분히 바라볼 생각이다. 지난번 베르메르의 묘지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의 내 감동은 온통 그 좁은 묘지의 판석 위에 쏠려 있었지만 다시 델프트의 구교회를 찾게 된다면 베르메르가 묻혀 있을 델프트의 구교회 전체가 그리하여 그가 살다간 그 시대의 일상이 차분히 내 마음에 내려앉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가져본다.
20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