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영국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즘 영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분이 쓴 『런던 미술관 산책』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이유 역시 내가 미술에, 범위를 좁혀 서양 회화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더러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영국에서 살며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법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예를 들어 필자는 런던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 뒤에 있는 국립초상화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을 소개하면서 “잘 웃지 않는 영국인”의 특성이 그 미술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에는 영국 역대 왕과 왕족, 귀족, 위인들의 초상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로 이 작품들 중 웃는 표정을 한 초상화가 하나도 없어서 이를 보고 과연 잘 웃지 않는 영국인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구나 했다는 것이다. 글쎄? 말로 까불랑거리기 좋아라 하고 별 것 아닌 일로 쉴새 없이 떠들고 낄낄거리기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내가 아는 영국 사람들인지라 - 이 시츄에이션이 궁금하신 분은 유튜브에서 "영국남자"를 시청해보시기를 권한다. - 필자가 말하는 잘 웃지 않는 영국인의 특성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의아했던 것이다. 한편 필자의 표현대로 초상화라는 것이 사진이 없던 시대에 마치 증명사진과 같은 역할을 하던 것인데 공적 용도로 쓸 증명사진 찍으면서 헤벌쭉 쪼개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또 그 미술관의 초상화로 남은 영국의 왕후장상(王侯將相)들은 필자의 느낌대로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던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나와 같은, 당대 영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아직도 장소팔 고춘자 식의 만담(漫談)을 너무 좋아하고 그걸 보고 웃으며 뒤집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영국에 살며 기차 간에서 쉴 새 없이 웃고 떠들어대는 영국 촉새들 때문에 기차에 앉으면 무조건 눈을 감아야 하는, 정말 잘 웃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에서 온 나는 영국인들의 그런 특성이 무척 피곤하고 짜증스러웠다. 한편으로 아무래도 내 인식의 범위가 좁아서 그런 지 모르겠으나 영국에 살면 살수록 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러하며 그래서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경험만 쌓여 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 웃을 일에 웃고 울 일에 우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감성이자 정서이지 거기에 국적이 따로 있고 인종이 따로 있을 리 없다는 것이 영국 생활 끝에 얻은 것이라면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동지를 코 앞에 둔 요즘 런던은 오후 세시 반이면 해가 떨어져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으리라. 겨울 날씨는 또 햇빛 한 조각 보기 어려워 얼마나 꿀꿀하던가? 이런 계절에 영국 사람들,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 그 영국의 장삼이사들이 실실 쪼개며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참 유치한 코메디를 곁들인 옛 노래 한 곡이 생각나 링크로 덧붙여 놓는다. 브링 미 선샤인 (Bring be sun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