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하여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그 당위성을 설득하겠다고 당시 젊은 검사들과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라는 자리를 가졌다. 그때 한 젊은 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물었다. "몇 학번이십니까?" 당시 현실 정치에 대해 관심 1도 없었던 내가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이라는 분과 동질성을 느끼고 그분을 지지하는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있었다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그 질문은 당시 5급 공무원인 젊은 검사가 국민 투표로 선출된 우리나라 정부 수반 대통령 노무현에게 던진 저열한 비아냥인 동시에 그 자들이 나와 같은 보잘 것 없는 국민이자 시민에게 던지는 비수와 같은 비아냥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러나 그분과는 달리 고등학교 졸업 후 별 의미 없는 허송 세월하다 나이가 차서 피할 도리 없이 군대에 갔고 제대 후 겨우 지방 대학교에 적을 두고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어렵게 서울에 일자리를 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산한 서울살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2003년 그때 연배 차이도 그리 나지 않는 젊은 검사는 고졸인, 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고 이후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부끄러울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엄청난 경력을 쌓아온 고졸인 이 나라 대통령을 향해 몇 학번이냐고 비아냥대었던 것이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야간 대학이나마 적을 두고 마쳤더라면 그 자(者)는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오셨는지, 주간인지 야간인지 물었을 것이다. 그 자의 대통령을 향한 비아냥은 내게 꽂는 비수 같았다. 그 이면에 전대협과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80년대 학번들과 동년배인 나는, 그러나 그런 것들과 아무 연관도 없고 알지도 못한 채 그때 대학에 적을 두지 못했고 90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대학 생활을 했다. 내가 이른바 그때의 운동의 노래를 본격적으로 듣고 혼자 따라 부르기 시작했던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한참 세월이 흐른 2003년 이후의 일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청맹과니처럼 나 혼자, 나를 위해 좌충우돌을 하던 80년대 그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우리 나라를, 우리 민족을 생각하고, 고뇌하며 치열하고 살았던 것이구나,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갈등이 소란한 오늘 이 국면에,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자들의 소란이 온 뉴스 판을 뒤덮고 있다. 옳은 말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다만,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잘 잘못이 가려지고 그 단죄와 용서가 이루어진 정리된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오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인 조국은 한일 간을 둘러싼, 어처구니 없게도 우리 내부의 갈등에 부쳐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죽창가”를 소환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는 “사법고시에도 붙지 못한”이라고 비아냥거린, 그러나 사법고시 따위 치지도 않은 1965년생, 인문계 부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조국을 위하여, 오랜만에 죽창가 다시 들으며, 그 죽창 내 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싶어지는 오늘, 2019년 여름에 잡문 몇 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