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니, 저 패션!
영국은 물론이려니와 근래 유럽 유명 관광지에 가보면 우리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참 멀기도 하고 물가도 비싼 유럽까지 여행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 텐데 많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을 유럽에서 볼 수 있다니 이건 분명 우리나라에 형편이 괜찮은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뿌듯하다. 물론 유럽에서 보는 동아시아 사람들 중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잘 드러나지 않으나 가만 눈 여겨 보면 일본에서 온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기는 하다. 그래도 인구수로 따지면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적다고 말할 수 없겠다. 거듭 자랑스럽다. 그런데 내가 외국에서 얼굴만 척 보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사람을 알아보는 무슨 특별한 신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저 분들이 우리나라 사람이겠거니 하고 짐작해버리는 이유는 사람들의 옷차림 때문이다. 대체로 유럽을 여행하는 우리나라 분들의 옷차림은, 특히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의 옷차림은 그곳이 어디든 험한 산을 등반하기로 단단히 작심을 한 사람들의 것이라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지가 유명 자연경관지라면 이 완벽 등산복 패션은 그런대로 이해할만한데 도심지 시내 대로로, 고성으로, 왕궁으로, 성당으로 심지어는 미술관으로 고산 등정에도 전혀 하자 없을듯한 등산복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예를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 물론 영국이나 다른 유럽에서도 - 공급자가 주장하는 광고용 어휘겠지만 - 기능성 활동복이라 해서 등산복을 일상복으로 즐겨 입는 사례가 없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등산화에 등산복 바지, 재킷까지 등산복을 완벽하게 차려 입고 도심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은 내 관찰로는 대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사람 아니고서는 역시 그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이 완벽한 등산복 차림에 등산모자까지 쓴 남성이라면, 또 완벽한 등산복 차림에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딱 어울릴만한 얼굴 반을 덮는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라면 이는 더 살펴볼 것도 없이 99.99%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사람이다. 물론 유럽 특유의 히끄므레 죽죽한 흐린 날씨에서 한사코 선글라스를 고집하시눈 여성분들, 그리고 그 선글라스의 안경다리 폭이 무척 두텁고 여기에 이른바 명품 로고가 딱 하니 박혀 있다면 100%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여성분들이라 할 것이고.
나 역시 입어 편한 옷을 즐기는 사람이고 이른바 기능성 활동복의 애호자라 다른 사람의 옷차림, 곧 패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처지는 못 된다. 게다가 유럽까지의 먼 여행길에 복장을 최대한 단순화하고 간편화하자는 여행자의 현실적인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아마 패션이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알고 그에 맞춰 입을 줄 안다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한다. 괜한 자격지심이고 쓸데없는 신경과민인지 모르나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등산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고서 보무도 당당히 입장하던 일군의 관광객들을 넌지시 바라보던 그곳 직원의 표정이 가끔 생각난다. 미술관에서 안내하는 관람순서에 아랑곳없이 역주행 하는 일군의 사람들 옷차림 역시 이 완벽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런 분들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겠지. 아무튼 유럽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문화를 접하는 좋은 경험을 쌓기를 바라는데 낯 뜨거운 등산복 패션에 변화가 있다면 더욱 자랑스럽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 남기는 잡문이다.
(*)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개그맨 박명수의 코멘트에 어이없는 헛웃음을 날리며 가수 장윤정이 던진 한마디가 묘하게 글을 쓰는 동안 머리에 떠올라 이 잡문의 제목으로 살짝 바꿔 달아 보았다. 장윤정이 박명수를 향해 던진 한마디가 “어떡하니! 저 진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