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책꽂이

노포의 장사법

the.story.teller 2019. 3. 21. 09:47

오래된 집을 두고 우리는 이를 고택(古宅)이라 하고 오래된 점포(店鋪), 곧 오래된 가게를 노포(老鋪)라 한다. 우리가 고포라 하지 않고 노포라 하는 까닭은 가게란 것을 눈에 보이는 형상 또는 위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결부된 사람들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마치 사람과 같이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겪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포를 이야기할 때는 사람이 먼저가 되는 것이다.

이 나라 상위 기업 3만개의 평균 수명이 고작 17년밖에 안 된다는데 평균 업력 54년에 육박하는 노포 스물 여섯 곳을 선정하여 이를 소개한 책 『老鋪 노포의 장사법』을 읽었다. 이 노포들은 정육점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음식점들인데 노포가 어디 식재료점 음식점만 있겠냐만 그것들이 요리사라는 저자의 메인 필드이기도 하거니와 책을 읽는 독자 우리 모두가 사는 매 순간 고민하는 근본 또 생각하자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이냐 살기 위해 먹는 것이냐 하는 우리 삶에 대한 나름 철학적이기도 한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요즘 온라인 공간에 차고도 넘쳐 휴지처럼 소모되었다 사라지는 맛집을 소개하는데 목적을 둔 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람들이 찾는 음식을 내는 집, 그 집 업주와 종업원들을 소개하고 과연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고객들 대접하는가 그리하여 반 백 년을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어 업력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가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풀어낸 책이다. 그렇게 진득이 세월에 녹아 아직도 음식을 내는 그 업주와 그 종업원들에 대한 이야기인 한편으로 그런 집을 찾아 끼니를 때우고 음식을 즐기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결국 ‘우리가 먹고 사는 이야기’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것 외 사는데 뭐 더 중한 것이 있는가?

외국 살이 경험으로 유럽에서 몇 백 년을 이어가는 점포를 더러 본 나로서는 그들의 오랜 전통이 부러웠던 한편 그런 종류의 전통이 우리에게 부재한 까닭은 고달팠던 우리 근현대사 때문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 그럴 듯 하게 들렸고 오히려 무엇이든 대충대충 빨리빨리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정이 그 팍팍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딛고 빠른 시간에 이 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의견에 과연 그럴 만 하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다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책에 소개된 노포의 사람들처럼 사소한 것들을 소명처럼 묵묵히 감내해내고 집중하는 뚝심, 업주와 종업원과 고객 사이의 교감과 배려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정성 들여 조리하여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과 또 우리 주변에 다양한 자기만의 업장에서 노포와 같은 단순한 원칙을 지켜내며 심지어 대를 이어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성장을 이뤄낸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책을 열며 보통 책 날개에 붙게 마련인 저자의 지난 이력을 훑어보는데 요리사라는 본인 생업을 내세울 뿐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어느 직장에 다녔는지 누가 준 무슨 상을 받았는지 하는 소개가 일절 없어 신선했고 책 속 문장은 우리 시대 어느 문사의 글보다 유려했다. 맛집과 요식업에 얽힌 잡설들이 어지럽게 떠돌아 다니는 요즘  『老鋪 노포의 장사법』이라는 진짜배기를 발견했다. 진짜 고수는 따로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