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거 북벽
스위스 알프스의 멘리헨에서 바라본 융프라우 · 묀히 · 아이거 북벽
Jungfrau, Mönch and Eiger peaks and The North Face of The Eiger viewed from Männlichen, Switzerland
2013. 4.
영국에서부터 차를 몰아 스위스 알프스로 여행 가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지도를 검색해보던 내 눈에는 몽블랑(Mont Blanc)과 마터호른(Matterhorn) 그리고 융프라우(Jungfrau)가 들었는데 몽블랑과 마터호른은 먼 훗날을 위한 여행지로 마음속에 남겨두며 그나마 근거리인 융프라우로 행선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융프라우로 가보기로 작정한 것은 그나마 영국에서 가깝기 때문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거기 융프라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아이거(Eiger)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릴 때 영화평론가 정영일씨의 해설로 KBS 명화극장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영화 『아이거 빙벽』의 장면들이 아스라한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실 IMDB를 조회하여 영화 속 스틸 샷과 줄거리를 대충 훑어봐도 영화 장면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알프스의 눈 덮인 준봉과 KBS 명화극장의 오프닝 장면만 어렴풋이 기억난 뿐이지만 스위스 알프스의 최고봉들이 잘 보이는 멘리헨(Mannlichen)의 전망대에서 줄곧 내 시선을 끈 것은 가장 높은 융프라우가 아니라 바로 그 곁에 서서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아이거의 웅자였고 특히 음산한 모습으로 내 앞에 버티고 선 아이거 북벽의 모습이었다.
아이거는 해발고도 3,970m의 알프스 산맥 봉우리의 하나로 최고봉인 융프라우 뿐 아니라 바로 옆 자리에 선 묀히( Monch) 보다도 낮은 봉우리고 세상에 알려진 험산 고봉들에 견주어도 결코 높은 봉우리라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등반을 위한 출발지에서부터 거의 수직으로 1,800m 치솟은 북쪽 사면은 일 년 내내 햇빛이 들지 않아 만년설을 머리에 인 빙벽으로 덥인 데다 등반 도중 악천후를 만나면 어디 피난할 자리도 마땅치 않은 직벽이라 1938년 7월 여름에야 스위스-오스트리아 등반팀이 북벽을 통해 아이거 등정에 처음 성공했다 한다. 이후 많은 등반팀이 아이거 북벽을 통한 정상 등정에 성공을 했지만 극단을 추구하는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선례가 없는 최초의 방법으로 아이거 북벽 등정을 시도들이 생겨나고 특히 한 겨울철에 아이거 북벽 등반을 시도하는 등반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는데 고산 등정에 취미도 관심도 없는 나는 이것을 용감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 지 무모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도전 끝에 지금까지 아이거 북벽 등반 도중에 최소 여든 네 명의 등반가들이 목숨을 잃어 아이거 북벽은 살인절벽(mordwand)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한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아이거 빙벽의 면적이 점점 줄자 낙석 사고가 빈발하여 히말라야의 고봉들보다 더욱 등반하기 까다로운 코스로 등반가들에게 알려져 있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틀림없이 아이거 북벽을 향한 사람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므로 혹자는 빙벽이 완전히 녹아버린 아이거 북벽을 최초로 등정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스위스 알프스의 멘리헨에서 바라본 융프라우 · 묀히 · 아이거 북벽
Jungfrau, Mönch and Eiger peaks and The North Face of The Eiger viewed from Männlichen, Switzerland
2013. 4.
배경음악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by Dana W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