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뿐이다
2017. 2.
지난 2월 초에 갑자기 독일 함부르크로 장기 출장계획이 잡혔다. 젊을 때는 출장일정이 잡히면 그렇게 기대 되고 좋았는데 이번에 출장계획이 잡히고 항공권을 예매하는 동안 파리에서의 환승 포함 편도 17시간 비행 스케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장거리 장기 출장일정이 잡히면 예전에는 토요일 늦어도 일요일에는 출국해서 월요일부터 일을 봤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동 시간을 모두 평일로 잡았다.
부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출장이었다. 출국 항공편에 오르면 부족했던 잠이나 실컷 자자 했는데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오른 후 기내 식사를 끝내고 와인을 거푸 마셔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좌석 스크린으로 지난 방송 프로그램을 봐도 재미없고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의식만 더 또렷해질 뿐이었다. 그때 기내 스크린을 보니 벌써 비행 다섯 시간을 넘겨 항로 궤적을 표시하는 스크린 지도 위에 이루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같은 지명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비행기는 겨울 시베리아 동토 위를 날고 있었다.
대륙간을 이동하는 대형 여객기 출입문은 안전을 위해 주변에 넓은 공간을 확보해놓았는데 이곳에 커튼을 치면 객실 좌석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항로 궤적을 표시하는 지도를 보고 좌석에서 일어나 그리로 가서 출입문에 달린 작은 창문 덮개를 열어보니 눈이 시리도록 파란 성층권을 뚫고 눈부신 햇살이 고도 1만 미터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날개 위에 떨어지고 있었고 날개 아래에는 시베리아 동토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시베리아 하늘을 날아 유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잠이 안 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까?
출장을 마치고 귀국 후 휴일에 지인들과 함께 산행을 갔다. 산행 중에 지인 한 사람이 “오늘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게 사는 하루”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전에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그렇구나, 오늘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게 사는 날이구나 했다. 다시 지쳐 가고 귀국 후 역시 제자리고 출장 끝에 건져온 성과가 눈 앞에 드러나지 않아도 출국 항공기내에서 설렘을 느꼈고 가서 일 했고 구경 다녔고 이렇게 못 찍은 사진들을 건져왔으니 나는 오늘 여전히 젊은 날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혹은 하려 한다.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박우현,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