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다반사

운칠복삼

the.story.teller 2024. 8. 9. 01:42

Waiting on the Heath

Jonathan Stewardson

며칠 전 거래처 사람들과 늦은 밤까지 함께 술 마시다가 그분들 중 누가 세상사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 하는 말을 듣고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야 익히 아는 말이지만 운칠복삼은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새로 들은 운칠복삼이야말로 그간 내 직장 생활 그리고 세상살이의 경험치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지하철역이나 버스터미널 같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서는 가만히 곁으로 다가와 속삭이듯 '기(氣)나 도(道)에 대해서 아십니까?'하고 묻던 사람이 많았다. 내게도 앞길을 막은 채 기나 도를 아느냐 묻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가던 걸음을 절대 멈추지 않고 기나 도를 안다는 놈이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쏘아 붙이듯 상대를 쓰윽 눈으로 훑어보고 재빠르게 지나쳐 버렸다. 내가 비록 기와 도는 모르나 한 가지 믿는 것은 있으니 억지로 가져다 붙이자면 기지전부(技之全部)야(也)라, 기가 세상살이의 전부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기를 갈고 닦으면 못 이룰 것 없노라 믿고 살던 철없던 한 철이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 철없던 시절을 지나 세상살이 운칠기삼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운이 가르는 명암(明暗)에 따라 울고 웃는 사이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기를 또 몇 해 였던가? 그렇게 지내다보니 대체 내가 부린 기(技)가 무엇이며 그로부터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대답할 수도 없겠다 싶은 사이 이 겨울이 더럭 찾아와 버렸고 이 겨울에 나는 운칠복삼이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은 길거리를 걸을 일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기와 도가 통하지 않는 체증 걸린 세상이라서 그런지 기와 도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없어져 버렸다. 이제와 운칠복삼의 그 오묘한 이치를 알아 버린 내게 누가 다가와 기와 도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말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러겠지. 내가 어디 가겠어?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만은 꼭 그러리라 장담은 못하겠다. 2008. 12.